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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의식의 불일치

빠꼼임 2020. 8. 28. 09:17

[태평로]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

 

김광일 논설위원

 

천 엔짜리 지폐에도 얼굴이 올랐던 '일본 근현대 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는 자식 많은 집 늦둥이로 태어났다. 그 무렵 상당한 명문가였던 집안이 몰락했다. "망해버린 부잣집의 막내 도련님은 대문호 자질이 있다"는 말이 생겨났다. 영화(榮華)와 풍화(風化)를 한몸에 겪었대서다.

시인 고은은 '불운'과 '퇴폐'를 문인 자질로 꼽았다. 이게 없으면 절창이 안 나온다고 했다. 시인 신경림은 '절규'를 꼽는다. 살을 깎는 고통으로 온몸을 쥐어짜는 비명이 아니라면 어찌 세상을 울릴 수 있겠는가. 한때 "인류 최고 발명품이 '문자'일까 '와인'일까" 소란했는데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인류 최고 발명품은 지옥이다"라는 말로 논쟁의 끝판왕이 됐다. '지옥'이 없었다면 문학은 군주 찬양가 정도로 전락했을 것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야당 의원에게 "소설 쓰시네요" 했다는데 본인은 알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삶과 예술의 '밀당' 같은 것이 숨어 있다. 의식과 존재가 지옥처럼 뒤틀리며 내부 충돌을 일으키는 삶을 겪을 때 소설가 이청준의 말처럼 "소설이란 제 삶을 베끼는 것"이 된다. 양 끝으로 분열된 의식과 존재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뒤 찾아오는 텅 비어 있음, 거기서 문학은 싹을 틔운다.

그런데 느닷없이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가 강남 좌파의 비윤리적 행동을 설명하는 준거로 등장했다. 이달 들어 '검찰 개혁과 촛불 시민: 조국 사태로 본 정치 검찰과 언론'이란 제목으로 '조국 백서'가 나왔는데 한 달짜리 법무장관을 지낸 조국씨의 '위선'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부터 지배 세력 내 개혁 운동가들은 한편으로 자기 존재 자체에 주어진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율배반적 면모를 보이곤 했다." "이런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말이 하도 이상해서 저명 의학 교수에게 물었더니 "정신 분열을 겪고 있다는 자백 같다"고 했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볼턴도 북핵과 관련된 문 대통령의 생각을 "정신 분열적(schizophrenic)"이라 했는데, 그 역시 한국 대통령에게서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본 것일까.

천체물리학자의 꿈이 우주 탄생과 운행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간결한 방정식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나는 현 집권 세력과 조국 지지자들의 머릿속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간결한 표현을 찾고 싶었다. '내가 하면 투자, 네가 하면 투기', 이런 행태를 흔히 '내로남불'이라고 했으나 저들의 정신적 방어 기제를 전부 설명하기엔 미흡했다. 어떤 긴팔원숭이는 함께 새끼를 기르던 암·수컷이라도 새로운 수컷 강자가 나타나면 그쪽 편에 서서 어제까지의 짝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적으로 돌변한다. 현 정권의 어떤 인물을 보면 동물적 감각의 '편 가르기와 진지전'에 뛰어난 선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가령 저들의 성추행 DNA까지 설명할 순 없었다.

9년 전 문 대통령이 쓴 책 '운명' 417쪽에 이런 말이 나온다. "노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나 진배없었다." 아, 그렇다면 현 집권 세력은 오랫동안 정치적 타살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해온 것인가 하고 추정해보니 상당 부분 설명이 됐다. 취임 전 구호 '사람이 먼저다', 취임 이후 '적폐 청산, 주류 교체' 드라이브, 그리고 4대강 보든 뭐든 앞 정권 것이라면 다 뜯 어내려는 행태 역시 '보복'으로 보면 이해가 됐다. 노 대통령이 즐겨 불렀다는 운동 가요처럼 '사람 사는 세상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 안을 때, 모순의 거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버리고…' 하는 그날을 꿈꾸며 "보복을 해온" 것일까. 여기에 덧붙여 '조국 백서' 속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보탰더니 지금껏 부족했던 설명이 비로소 메워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7/20200827047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