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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세일기] 대한항공은 나를 한 살로 알고 있다

빠꼼임 2020. 11. 28. 11:15

[김형석의 100세일기] 대한항공은 나를 한 살로 알고 있다

[아무튼, 주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20.11.28 03:00

 

일러스트=김영석

[김형석의 100세일기] 대한항공은 나를 한 살로 알고 있다

[아무튼, 주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20.11.28 03:00

 

일러스트=김영석

이달 초였다. 지방 강연을 위해 김포공항에 갔다. 탑승권을 받는데 일행 중 내 표만 오류가 생겼다.

매니저는 컴퓨터를 두들겨 보고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민등록증 사진과 대조해 보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물었다. 백한 살이라고 답했다. “컴퓨터에는 한 살로 되어 있다”며 비시시 웃는다. 그 컴퓨터에는 세 자리 숫자인 100이 입력되지 않는 모양이다.

 

세브란스병원 원목 장모는 106세가 되었을 때 주민 센터에서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 얘기가 생각났다. 어쨌든 내 이름이 찍힌 탑승권을 받았다. 공항 라운지에서 그 탑승권을 살펴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930회 비행기를 탔다. 82만6000마일 이상 비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대한항공 직원이 이상하게 여길 만도 했다. 한 살짜리 어린애가 930회 탑승한 것으로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항공사 비행기도 많이 탔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여행을 했다. 세계 일주 여행을 두 차례, 미국과 캐나다 여행이 스무 번쯤 된다. 유럽에도 몇 번 다녀왔다.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가보고 싶은 곳은 거의 다녀 본 셈이다. 공산 치하일 땐 가지 못했고, 소련이 붕괴된 뒤에는 다녀온 가족과 친지들 얘기를 듣곤 찾아보고 싶은 의욕이 사라졌다. 러시아 문학이 좋아서 많이 읽었다. 그런데 현실을 들어 보니 그 인상이 사라져 정신적 향수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많은 여행으로 얻은 결론이 있다. 조국에 대한 애정이 하나, 서울이 사랑받기에 충분한 수도(고향)라는 생각이 다른 하나다. 자연 풍토와 기후는 말할 게 없고 일교차도 적절하다. 어디를 가나 살고 싶어지는 수려한 산수는 한국과 비교할 곳이 없었다. 노르웨이는 원시 자연이 아름답고 착한 민심은 비교할 데가 없다. 그러나 백야에는 밤이 없는 20여 시간이 낮이라 상상 외로 피곤했다. 1년 내내 여름인 곳이나, 더위를 모르는 도회지들은 변화가 없는 지루함을 안겨 준다. 영하 30도 추위를 참아야 하는 겨울 지역도 있다. 내 딸이 사는 미국 휴스턴에서는 영상 3도 추위에 초등학교가 휴교를 하기도 한다.

 

세계 대부분의 도시들은 넓은 평야에 강줄기를 따라 형성되었다. 서울처럼 산과 들, 강물이 함께 조화를 갖춘 아름다운 도시는 드물다. 남해안 다도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로 개발할 수도 있다. 세계를 다녀보기 전엔 한국과 서울의 가치를 모르고 살았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 100의 자연 혜택을 받으면서 50의 가치를 누리는 사회가 있고, 50의 혜택을 갖고 100의 삶의 가치를 향유하는 나라가 있다. 우리는 자연의 축복은 받으면서 생활 가치는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문화와 정신적 후진성, 인간관계의 윤리성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