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세일기] 방송 출연 70年史
[아무튼, 주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20.09.26 03:00
일러스트=김영석
며칠 전 뉴스를 보려고 TV 채널을 돌렸는데, 내 얼굴이 나타났다. MBN에서 방영한 강연 장면이다. 보면서 마음이 놓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늙지는 않았구나. 멋진 남자는 못 되지만 방송 무대에서 쫓겨나지는 않을 것 같구나’ 싶었다. 혼자 웃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라디오와 TV 등 방송에 참여한 지 70년 세월이 흘렀다. 라디오 시대에는 통행금지 시절이 있었다. 밤 12시가 넘을 경우 남산 KBS에서 생방송을 위해 신촌 우리 집까지 허락되는 차가 왕복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새벽 2~3시가 되어 귀가했다.
TV 시대 초창기에 중요한 운동경기가 있으면 TV가 있는 집으로 가서 단체 관람을 했다. 김기수 선수와 벤 베누티(이탈리아) 선수의 복싱을 보려고 뒷집 이광린 교수 집에 교수 7~8명이 모였던 기억도 떠오른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미국의 딸들이 내 건강을 걱정했다. 응원에 열중했다가 뇌출혈이라도 일으키면 큰일이다 싶었는지, “가벼운 혈압 약을 먹고 조심조심 응원하라”는 충고를 받기도 했다. 온 국민이 열광했으니까.
지금 회상해 보면 나에게는 TV 시대보다 라디오 시대가 더 좋았다. 여러 해 동안 국군 방송에 출연했기 때문에 그 보람도 컸다. 나만큼 국군의 사랑을 받은 출연자도 많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육군에서 나에게 경비행기를 보내주었다. 일선을 방문하며 강연하던 시절이었다. 삼성에서 창설한 동양방송에서는 1년 몇 개월 동안 아침 시간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병철 회장이 자신도 애청자라면서 감사의 뜻을 전해주었다.
KBS에서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30분씩 한 사람이 주제 발표를 하고 토요일에는 교수 5~6명이 90분간 종합토론을 했다. 그 가운데 ‘한국인의 역사적 이념’을 주제로 한 토론이 있었다. 그때 결론으로 ‘밝은 사회’를 제안한 기억이 난다.
불행하게도 TV 시대로 접어들면서는 내가 방송에 출연하는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방송국들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오락과 흥미 위주의 프로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TV 프로를 위한 출연은 있었으나 내가 TV의 주역이 되는 경우는 적었다. 한때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던 KBS ‘심야토론’은 사회적 반응이 대단했다. 90분 동안 나를 비롯한 전문가 4~5명이 토론을 벌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KBS의 ‘회고록, 울림’과 ‘인간극장’에 출연한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지난달에는 EBS에서 ‘유일한의 생애’를 배경으로 한 4회 분량의 사회문제를 다뤘다. 이번에 보았던 MBN에서는 내 강연만을 위한 프로라서 출연했다.
마지막 장면에 동석했던 사람들이 눈물을 닦는 장면이 나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느꼈다. 나이 때문에 오는 감상이었을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여전히 세상은 착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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