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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인데 무죄라는 논리

빠꼼임 2023. 2. 20. 07:31

[데스크에서] 위법인데 무죄라는 논리

입력 2023.02.20 03:00
 
2019년 3월 이뤄진 김학의 전 차관의 ‘긴급 출국 금지’ 과정의 불법성을 2년 가까이 지나 취재하는 일은 그리 내키지 않았었다. 김씨는 ‘별장 성 접대’ 의혹 동영상으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었다. 출금 과정의 불법을 보도하는 게 자칫 그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자가 입수한 106쪽의 공익 신고서에는 가짜 사건 번호가 적힌 출금 서류를 비롯해 그 대상이 김학의가 아니라 누구라도 눈감기 어려운 불법성이 상세히 담겨 있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검경의 명운을 걸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한 후 일어난 일이었다.

수사기관은 보통 ‘적법 절차’에 발목이 잡혀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선 검찰이 먼저 적법 절차 위반이 직권남용이라며 법원 판단을 구했다. 그동안 법원은 적법 절차에 엄격한 태도를 취했다. 출국 금지, 압수 수색, 구속 등 기본권 침해가 따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특히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했다. 2007년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된 제주지사 사건에서 증거물이 위법하게 수집됐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을 비롯해 영장 범위를 벗어나거나 피의자가 참여하지 않은 압수 수색이 이뤄진 사건에서 줄줄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김학의 불법 출금’ 1심 재판부는 출금 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했다. 긴급 출금의 요건인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어 위법하다면서도, 김학의씨에 대한 재수사가 기정사실화된 상태여서 출금 조치의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출금 조치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직권남용 사건에서 ‘목적의 정당성’은 낯선 단어다. 오히려 법원은 목적의 정당성을 앞세워 공직자가 권한을 남용하는 행위를 처벌해 왔다. 법원 판결이 국민에게 행동의 기준이 된다는 점을 볼 때 ‘목적의 정당성’을 이유로 한 무죄 판결은 매우 위험하다. 당장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응징한 후 ‘목적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법원이 ‘재수사가 확실시된다’며 적법절차 위반을 용인한 것을 두고도 “기소가 확실시되는 사람은 피고인으로 취급해도 되느냐”는 지적도 있다. 이 논리는 권력이 정치적 반대 세력을 ‘나쁜 사람’으로 지목해 출국 금지·체포·감금하는 행위에도 면죄부를 줄 수 있다.

법원이 적법절차를 앞세우다 보면 때로는 범인인 것이 뻔한 사람을 놓치는 답답함도 있었다. 그래도 법원을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한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법절차 원칙을 적용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법원이 ‘나쁜 사람’으로 지목된 이에게는 적법절차를 생략해도 된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죄 판결의 충격적인 논리가 사법 불신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