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에서 본 두 풍경
[아무튼, 주말]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안중근 의사 숭모회 임직원은 가끔 1박 2일 지방 여행을 떠납니다. 그때마다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 전남 장흥(長興)입니다. 일단 장흥을 거쳐 다른 곳으로 바꿔가며 여행합니다. 장흥에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안중근 의사를 모시는 해동사(海東祠)라는 사당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흥은 안중근 의사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장흥에 거주하는 죽산 안씨 문중에서 우리나라에 안중근 의사를 모시는 사당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6·25전쟁이 막 끝난 그 어려운 시기인 1955년 사당을 지었습니다. 참고로 안중근 의사는 순흥 안씨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알고 해동명월(海東明月)이라는 편액을 써 보내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사당을 건립했을 때 안중근 의사의 따님인 안현생 여사와 조카 안춘생 선생이 안 의사의 영정과 위패를 들고 장흥읍에서 멀리 떨어진 사당까지 걸어갈 때 수많은 사람이 따라 걸었으며, 사당에는 흰옷을 입은 수천 명이 구름같이 모였습니다. 이처럼 사당 건립 경위가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그 뒤 장흥이 서울의 정남쪽이라 하여 이름 붙인 정남진 바닷가에는 장흥 출신 한 기업인의 성금으로 안중근 의사 동상이 들어섰습니다. 이에 더하여 최근 장흥군은 안중근 의사 사당을 확대 정비하는 성역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8일 다시 장흥을 찾아 사업 현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당 근처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건립하여 교육과 관광 마당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내년 봄 개관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우리의 방문을 알고 장흥군은 기념관 앞마당에 기념 식수를 하도록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동안 장흥군은 안중근 의사와 맺은 인연을 강조하고자 장흥군과 만주 하얼빈이 경도 126도에 있다는 사실까지 끌어대었으나, 이제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는 서울 남산 외에 장흥군이 또 다른 안중근 의사 관련 성지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장흥 읍내에는 1894년 벌어진 동학농민군과 조일연합군(조선 관군·일본군) 사이의 석대들 전투를 기념하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있습니다. 석대들 전투는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전봉준을 비롯한 지도부가 모두 체포된 이후에도 항전을 계속해 동학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한 전투입니다. 석대들 전적지는 정읍 황토현, 공주 우금치, 장성 황룡 전적지와 함께 동학농민운동 4대 전적지 중 하나입니다. 석대들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당연히 신식 무기를 갖춘 관군에 밀려 수천 명이 사상하는 피해를 보았습니다. 역사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석대들 전투가 있기 전 3만여 동학농민군은 장흥 읍성(장녕성)을 공격해 함락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헌양 장흥 부사를 비롯하여 장녕성을 지키던 장졸(將卒) 9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이 볼 때는 장녕성의 조선 관리와 관군들은 부패한 조정을 지키는 군사였지만, 관리나 관군 처지에서 보면 나라와 임금의 안전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공복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장흥읍에는 동학 농민 봉기 당시 장녕성 전투에서 희생당한 장졸들을 추모하는 사당인 영회당(永懷堂)도 건립되어 있습니다.
지금 역사는 동학농민군을 혁명군이라 평가하지만, 다른 한편 장녕성을 지키다 죽어간 조선 관군들을 추모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리하여 영회당은 장흥의 다른 동학 유적과 함께 ‘장흥 석대들 전적지’로 2009년 국가 사적 제49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성 장흥 군수는 “역사의 희생자인 동학농민군과 순절한 장졸의 후손 사이에는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어 안타깝다며 양쪽의 역사적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습니다. 그래서 김 군수에게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주시길 바라며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죽은 자의 계곡(Valle de los Caidos)’ 사례를 말씀드렸습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희생된 승자 프랑코파와 패자 공화파 모두를 추모하는 엄청난 크기의 기념물이 있는데, 그곳 묘역에 양쪽 희생자가 함께 묻혀 있습니다. 물론 정치적 동기에서 조성한 묘역입니다만, 그래도 화해를 구현하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은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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