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5구간(물안고개~배티재.梨峙)종주산행
산행일짜 : 2007. 7. 22(일).
날 씨 : 내일이 大暑라서 한낮에는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다가 , 오전 내내 안개가 꽉 끼어서 조망도 없었으나, 11시 이후에는 안개도 걷히고,
그런 대로 햇살도 비췄음. 산행출발 시 21℃, 낮 최고 31℃
산행시작 : 06 ; 35,, 산행마침 : 15 : 15 ,, 산행시간 : 08시간 40분
산행거리 : 도상 약 11.4km, 산 행 자 : 산아, 야초
교통갈때 : 김천IC(04:58)~비룡JCT~산내JCT~서대전JCT~계룡IC(05:59)~벌곡면 농협(06:15)주차~택시(10.000원)~물안고개(06.30)
교통올때 : 배티재(15:55, 택시 20.000원) ~ 벌곡면 농협(16:17). 차량회수~ 계룡IC(16:30) ~서대전JCT~산내JCT~비룡JCT~김천IC(17:31)
산행경로
물안고개(06:35)~바랑산(555.4봉, 삼각점 08;03) ~ 삼거리이정표(법계사0.8km, 월성봉0.26km, 바랑산 1.2km, 08:23)~ 월성봉(650봉, 헬기장, 정상석 3거리이정표 08:39) ~ 흔들바위(08;49) ~3거리이정표(월성봉0.6km,수락계곡1.75km, 양촌,오산1.20km (09:16) ~ 전망바위(09:30)~ 수락재(4거리 이정표 09:39)~570봉(헬기장 09:56) ~ 깔딱재(10;16) ~830봉(이정표, 안심사2.3km,마천대1.15km, 충남 수락(계곡) 11:25) ~ 800봉(암봉,점심 12:45~13:05)~대둔산, 마천대(개척탑, 삼각점13:16)~이정표(안심사/옥계천4km, 용문골400m, 13:47) ~ 낙조산장(13:53)
~낙조대(14.08)~4거리 이정표(낙조대0.26km, 태고사0.79km, 마천대1.00km, 낙조산장0.38km. 14:15) ~태고사 뒤편 철조망(14:25) ~이정표
(장군약수터1.3km, 낙조대0.6km, 배티재1.2km, 14:30) ~ 약640봉(14:55)~배티재(15:15)
오늘 구간은 대둔산 도립공원구간이다. 어제 장맛비가 내린 탓에 습도도 높고, 기온도 어제보다는 높다. 오늘 산행 시작
점 물안고개는 도로를 새로 내느라고 한창 공사 중이다. 타고 온 택시 기사의 말에 의하면, 市道이기 때문에 언제 몇 년
걸려서 공사가 끝날는지도 알 수 없으며. 돈 있으면, 조금씩 한다고 한다,. 벌곡면 소재지를 거쳐 진입을 하는데 면소재지쪽은 아직 보상도 되지 않았는데 물안 고갯마루 부분부터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06시30분 도로공사중이라는 표지판이 서있는 바리케이드 앞에 타고 온 택시에서 내려 고갯마루로 향한다. 고갯마루에는 발파작업 장비와 , 오른쪽으로는 현장사무소가 있다. 고갯마루는 도로를 낸다고 온통 산을 깎아 급경사 절개지를 만들어 놓았고, 현장에서 로프를 설치했는지 로프가 매달려 있다. 로프를 잡고 절개지를 올라 잡목 숲 사이를 지나 427봉에 오른다(07:05).
봉우리를 넘어가자 급경사 내리막구간이다. 로프가 매달려 있다. 로프와 나뭇가지를 잡고 내림길이 이어진다. 안개가 너무 심해서 시야가 없다. 조망이 없으니, 앞의 바위가 무슨 바위인지 분간이 안 된다. 오른쪽은 천길 낭떠러지인 것 같다., 정맥길은 어제 장맛비가 내린 탓에 바위구간은 약간 미끄럽고, 나뭇잎은 비에 젖어 스치면, 옷이 금세 젖어든다. 오늘 같은 날 바람이라도 계곡에서 불어준다면, 산행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데 하는 마음이다.
대둔산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경계이며 하나의 산을 두고 전북과 충남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대둔산은 한국 8경의 하나로 산림과 수석의 아름다움과 최고봉인 마천대를 중심으로 기암괴석들이 각기 위용을 자랑하며 늘어섰다. 날씨만 좋다면 능선에 오르면, 멀리 마천대도 눈에 들어올 것인데 아쉬움이 크다.
07시27분 로프가 매달려 있는 급경사 오름 구간이다. 로프를 잡고 오르니 앞에 커다란 암봉이 안개 속에 얼굴을 드러내
보인다. 이어서 암봉을 오른쪽에 끼고 진행한다. 07시42분 이정표 <월성봉정상 1.46km(해발651m), 영주사 1.5km>를
만난다. 08시03분 삼각점을 만난다. 이 지점이 바랑산인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삼각점을 지나서 약간의 내림길이 이어
지고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전망 좋은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는 안개 속에 어디가 끝 바닥인지 구분이
안 된다.
08시23분 이정표(바랑산 정상 1.2km, 월성봉정상 0.26km, 법계사 0.8km)를 만나서 안개 속의 정맥길을 재촉하니 사거리 안부다(08:39). 안부에는 이정표(수락계곡1.36km 주차장, 영주사 1.83km, 수락계곡2.35km 양촌)가 세워져있고 .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이정표<흔들바위 0.18km, 수락계곡(매표소)1.36km, 바랑산 정상 1.46km>가 세워져 있고, 턱 위에 블록 헬기장이 있다.
08시45분 월성봉 정상석이 반겨준다. 정상석을 3분여 지나니 흔들바위 표석이 세워져있고, 표석 양옆으로 너른 바위 2
개가 있는데 바위 두 곳을 다 올라서 발로 굴려본다. 흔들림을 감지하지 못하겠다. 09시26분 나무계단을 따라서 내림길
이 이어지고 계단이 꺾어지는 부분 끝자락에 전망 바위가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도 안개만 없다면, 멀리로는 개척탑과, 대둔산 바위 암봉들이 시원하게 바라보일 것인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09시39분 수락재에 이른다. 수락재에는 이정표(흔들바위 1.62km, 마천대4.25km, 바랑산1.61km, 수락계곡 주차장
0.73km)가 세워져 있다. 오름이 이어진 다음 블록 헬기장을 지난 뒤(09:56), 깔딱재를 지나서 허풍봉(826m)에 오른다
(10:57), 여기에서 급히 좌측으로 꺾어야하나, 날이 더워서 더위를 먹었는지, 봉우리 이름 그대로 허풍이다. 귀신한테 흘렸는지, 그냥 우측으로 무심코 지나친다.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마천대 방향이 아닌 쌍칼바위와, 간첩바위 방향이 아닌가??
산행지도에도 이 지점이 길주의 표시가 되어있는데도 독도를 하지 않은 채 지나친 게 잘못이다. 올 때마다 코스는 다르지만 대둔산도 처음 산행도 아니고 야간산행 때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안개가 너무 끼어서 그런지 오늘은 참으로 이상한 날이구나 하면서, 이왕 잘못 들린 것 능선 끝까지 가보자고 하면서, 쌍칼바위를 지나 간첩바위까지 갔다가 허풍봉(826m)으로 되돌아오니 2시간은 흘렀다. 오늘 당초 계획은 배티재(이치)를 지나서 11.5km를 더 진행해야 되는 백령고개까지 잡았는데 계획이 틀려버렸다. 배티재(이치)애서 끊어야겠다.
11시23분 이정표(마천대2.35km, 220계단0.65km, 안심사2.4km, 수락계곡1.80km.월성봉3.50km)를 만난다. 내림길이이어졌다가, 다시 오름길이 이어진 다음 약 800봉에 오른다. 암릉길이 이어진다. 이제 안개도 걷히고, 시야도 트인다. 개척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12시12분 830봉에 오른다. 마천대 1.5km, 충남 수락계곡, 안심사 2.3km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마천대가 바로 보이고, 케이블카가 오르내리는 게 보인다. 12시34분 암릉길을 따르다가 전망 좋은 바위벼랑이 나타난다. 둘이 앉아서 점심 먹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벼랑 끝에 앉아서 점심 먹는 재미가 신선놀음은 절로 가란다. 점심을 먹으면서도(12:45~13:05) 오르내리는 케이블카와, 남한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대둔산 암봉들을 연신 바라본다.
13시05분 암릉을 따라서 마천대를 향한다. 해발 860m이정표를 지나서 좌측 밑으로 우회로가 있지만, 계속 암릉을 따라 가니 개척탑이다(13:16). 개척탑 주위에는 휴일이라서 만원이다. 주위 곳곳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고 있다. 사진 한 장 찍고, 삼각점을 확인하고, 낙조대로 향한다. 13시24분 마천대 0.15km, 낙조산장 0.7km, 낙조대 0.9km , 금강구름다리 500m, 케이블카 500m,태고사 0.9km, 용문골 삼거리450m 이정표를 지난다. 이정표가 좀 어지럽다. 곧 바로 커피를 파는 매점 앞을 지나고, 이어서 안심사, 태고사 사거리를 지나서 낙조산장에 도착이다(13:53)..산장에는 어디서 올라왔는지 등산객들이 취사를 하느라고 붐빈다. 산장을 뒤로하고, 돌계단을 올라 해질 무렵 서해의 수평선상으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다는 낙조대에 오른다(14:06).
낙조대를 뒤로하고, 태고사 갈림길에서 철계단을 따라서 내림길이 이어지고 장군 약수터 0.9km 이정표를 지나니 태고사 경내지 이므로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우측으로 꺾어서 내림길이 계속 이어지면서 우측으로 대둔산 암봉들을 바라보면서 내리막이 이어진다(14:25).
14시31분 삼거리 이정표(장군약수터0.3km, 배티재 1.2km, 낙조대 0.6km)를 지나서 우측으로 꺾어 내림길이 이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낙조대, 장군약수터 이정표를 또 만나면, 자동차소리가 들리고 배티재도 숲 사이로 어렴풋이 보인다. 우측으로 계곡을 따라 배티재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지만, 직진해서 640봉을 넘어서 과거 옛 조상들이 배티재에서 대둔산으로 다니던 표지판이 나오고, 주유소와 휴게소가 도로 건너 보인다. 오늘 구간 끝점이다(15:14).
해발 349m 배티재는 충청남도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구군의 경계로서 도 경계를 알리는 아취 탑이 서있고, 충남 쪽에는 인삼약초 산업의 고장 금산, 전북 쪽에는 호남의 금강, 완주 대둔산 이라고 아취 상단에 선전 문구를 써 놓았다. 휴게소 주변 잔디밭에는 황진 장군 대처비와, 이치대첩유허비, 이치전적지 표석 등 많은 기념물과 조형물이 설치되어있다. 여기 배티재에서 바라보는 대둔산 암릉은 병풍속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전적지를 한 바퀴 둘러보고 휴게소에 들려서 시원한 캔 맥주 1깡씩을 마시고, 휴게소 화장실 세면대에서 얼굴에 소금기로 찌든 땀을 간단히 제거하고, 오늘 산행 시작할 때 탔던 벌곡 개인택시(충남 58바 6170. 011-458-6380)를 호출한다.
산행시작점 물안고개 도로 공사현장
물안고개 도로공사 현장 사무실
물안고개(양촌면과, 벌곡면의 경계)
산행시작 부터 로프 붙잡고 올라야 함
공사가 끝나고, 펜스를 설치하게 되면, 오를데가 만만치 않을것임
물안고개 발파 공사현장(현장 사무소 간판에는 터널 공사한다고 되어있는데, 그냥 절개 하는것 같음)
산행시작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로프 구간이 나옴
안개 때문에 조망이 없슴
영주사 갈림길 이정표
삼거리 이정표
삼거리 이정표
월성봉 정상표시석
흔들바위 표지석
전망바위에 올라 섰으나 전망은 없슴
4거리 이정표
대둔산 [大芚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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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과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및 금산군 진산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878m. 노령산맥의 일부로 서쪽으로 만경평야를 굽어보는 이 산은 최고봉인 마천대(摩天臺)를 중심으로 여러 노암(露巖)이 기암 괴석을 이루며 솟아 있고, 부근에는 오대산(五臺山)·월성봉(月城峰)·천등산(天燈山) 등이 산재한다.
지질은 대부분이 선캄브리아기(Pre-combria紀) 후기에서 고생대까지 걸쳐 있는 옥천층군(沃川層群) 및 고생대 초기의 대석회암통(大石灰岩統)을 관입한 석영반암(石英斑岩)으로 되어 있다. 남동 사면은 장선천(長仙川)이 여러 지류를 모아 논산 저수지로 흘러들고 북동 사면은 독곡천(獨谷川)이 흐르는데, 두 하천 모두 금강으로 흘러든다.
식생은 대체로 높이 600m를 경계로 그 이하에는 소나무·상수리나무·개비자나무 등이 무성하고, 그 이상에는 신갈나무·졸참나무 등 낙엽활엽수가 울창하다. 이 밖에 고채목·돌양지꽃·천마제비난초·나나벌이난초 등 희귀 식물이 자생한다.
원래 대둔이라는 명칭은 ‘인적이 드문 벽산 두메 산골의 험준하고 큰 산봉우리’라는 뜻이다. 산 동쪽 2㎞ 지점에 있는 350m의 배티〔梨峙〕는 과거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였으며, 현재에도 여수∼청주를 잇는 17번 국도가 통과한다.
이 재는 임진왜란 때 완주군 소양면 신촌(新村)의 곰치대첩과 함께 전라북도를 지킨 격전지였다. 당시 황해로 진출하는 수로가 막히자, 전라도의 곡창 지대를 침공하려고 무주(茂朱)·금산·진안(鎭安)·용담(龍潭) 등에 집결하여 있던 왜군들이 배티와 곰티〔熊峙〕로 진격하여 큰 전투가 있었다. 완주목사 권율(權慄)이 호남 지방의 장병들을 지휘, 큰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여 진산면 묵산리에 이치대첩비를 세웠다 하나 일제 강점기 때 폭파되어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전라북도쪽은 기암 절벽이며 충청남도 쪽은 숲과 계곡이 아름다워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즉, 1977년 3월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의 38.1㎢가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1980년 5월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양촌면과 금산군 진산면 일대의 24.54㎢가 충청남도 도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전라북도쪽에는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연결하는 높이 70m, 길이 50m의 금강구름다리가 특히 유명하며, 마왕문·신선바위·넓적바위·장군봉·남근바위 등의 기암과 칠성봉·금강봉 등 첨봉들이 산재하여 경승지를 이룬다. 주요 사찰로는 안심사(安心寺)·약사(藥寺) 및 운주의 화암사(花巖寺) 등이 있다.
안심사는 1759년(영조 35)에 세운 것이나 6·25 때 소실되고, 지금은 석종계단(石鐘戒壇)과 부도전중건비(浮屠殿重建碑)만 남아 있다. 화암사에는 보물 제662호인 우화루(雨花樓)와 명부전·극락전·대불각 등이 있다.
충청남도쪽에는 낙조대(落照臺)의 일몰 광경이 장관이며, 진산의 태고사(太古寺)와 벌곡의 신고운사(新孤雲寺) 등 고찰이 있었으나 모두 6·25 때 소실되었다. 특히,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元曉)가 이 절터를 발견한 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12승지(勝地)의 하나로, 한용운(韓龍雲)도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승지를 논하지 말라.”고 하였다.
절 뒤에 의상봉·관음봉·문수대 등이 기묘하게 솟아 있고 앞에는 오대산과 향로봉이 막고 있어 절경 속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는 달이산성·성봉산성·농성(農城) 등의 산성과 묵산리의 성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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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벼랑에 앉아 점심을 먹는것도 괜찮음
개척탑에서 바라본 암릉
대둔산 마천대, 개척탑
멀리 개척탑이 바라보임
낙조산장
落照臺 안내판 내용,
해발 850M 이곳 頂上에서 해질 무렵 서해의 水平線上으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다하여 落照臺라 하였고,
日出日沒 景觀은 一大壯觀이다. 또한 新羅 31대 신문왕 원년 서기 681년 元曉大師가 이곳에서 太古寺
의 위치를 정했다고 한다.
梨 峙 戰 蹟 地
이곳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에 전라도 절제사 권율(權慄)의 독전하 동북현감 황진(黃進) 장군등이 왜적을 격파한 전
적지이다. 왜장 고바야가와 다카가케(小早川隆景)는 금산에서웅치(熊峙)방어선을 뚫고 호남의 수도 전주를 침공하려 했
다. 이 소식을 들은 황진 장군은 남원진에서 급히 전주로 와 안덕원(安德院)까기 침입한 적을 물리치고, 바로 이치(梨峙)로
달려가 휘하의 장수 공시억(孔時億), 위대기(魏大奇), 의병장 황박(黃璞)등과 함께 사력을 다하여 싸우다가 한때 부상도 입
었으나, 마침내 적을 대파하니 적의 시체가 수십 리에 즐비하였으며 아군의 피해는 적었다. 이에 왜적은 전주 침공의 야욕
을 버렸으니 이 대첩을 임진왜란 3대첩(梨峙, 閑山, 幸州)의 첫째로 손꼽기도 한다.
梨峙大捷遺墟碑
이 책은 조선 선조대의 무신으로 이차진주성싸움에서 순절한 무민공 황진(1550∼1593) 장군의 후손가에 400여년간 전해 내려온 고문서에 대한 조사보고서이다. 총 14종 125점이다.
황진은 선조 25년(1592) 동복현감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용인에서 왜군과 싸움을 벌였다. 이어 진안에 침입한 왜장을 사살하고, 이치싸움에서 적을 격퇴하였으며, 이듬해 왜적의 대군이 진주를 공략하자 진주성에 들어가 성을 지키며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주로 황진과 관련된 문서들이며, 두 아들의 문서들이 있다. 이 고문서들은 임진왜란 당시의 사실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자료로 평가된다.
황진은 선조 25년(1592) 동복현감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용인에서 왜군과 싸움을 벌였다. 이어 진안에 침입한 왜장을 사살하고, 이치싸움에서 적을 격퇴하였으며, 이듬해 왜적의 대군이 진주를 공략하자 진주성에 들어가 성을 지키며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주로 황진과 관련된 문서들이며, 두 아들의 문서들이 있다. 이 고문서들은 임진왜란 당시의 사실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자료로 평가된다.
武愍公黃進將軍梨峴大捷碑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1591년 조선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미구에 일본이 침범(來侵)할 것을 예언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복(同福)현감으로 근왕 병(勤王兵)을 이끌고 북상하여 용인(龍仁)에서 패전하고 이어 진안(鎭安)에서 왜적의 선봉장을 사살한 뒤 적군을 안덕원(安德院)에서 격퇴하고, 이듬해 충청도 병마절도사에 승진하여 패퇴하는 적을 추격, 상주(尙州)에 이르는 동안 연승(連勝)을 거두고, 적의 대군이 진주성(晉州城)을 공략하자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절도사 최경회(崔慶會)와 함께 성중에 들어가 9일 동안 혈전 끝에 전사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진주 창렬사(彰烈祠), 남원 민충사(愍忠祠)에 제향되었다.
이치 전투에서 활약할 당시 황진이란 분 대단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사온 검을 휘둘르면서
적병 수십명을 도륙했다고 전해집니다 도저히 검술로는 당해내지 못하자 일본군들이
조총을 쏘아 쓰러트리지만 몇개월뒤 다시 활약하시지요 조총 맞고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도 대단하신데
2차 진주성 전투때에도 맹활약으로 무능한 진주목사 서예원을 대신해 일본군
10만대군을 6일 동안 막아냅니다
황진이란 장수가 게속 살아있었다면 진주성은 어쩌면 함락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게하는 분이 이분입니다 |
늘 불행한 사람도 없고, 늘 행복한 사람도 없다.
옛 조상들이 다니던 대둔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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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체력 조심하고
항상 기도드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