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終)

낙동정맥11구간 ( 시티재 ~ 한티재)

빠꼼임 2009. 4. 20. 17:04

낙동정맥 11구간(시티재-한티재)종주산행

산행일짜 : 2006.2.12(일).                    날 씨 : 맑 음

산행시작 : 06 : 38,                            산행마침 : 17 : 48,               산행시간 : 11시간 10분
산행거리 : 27.7 km,                           종 주  사 : 산아, 임채헌, 야초 (3명)
 
산행경로
  시티재 -   미룡고개   - 이리재 -   618봉  - 운주산 -   불랫재 - 한티재
 
낙동정맥 제11구간 (시티재 - 한티재)

이번 구간은 시티재에서 한티재까지로 잡았다. 산행예정시간은 11시간 50분 정도로 예상했어나, 구간 곳곳에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어서, 예상은 11시간 50분 보다는 더 걸리지 않겠나 하고 생각도 했지만, 11시간 만에 구간 종주를 완료했다. 산행거리는 27km가 넘어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 크게 높은 산은 없다 할지라도 운주산(806.2m)과, 이름 없는 봉우리들이 많아서, 오르내림을 반복해야 하고 잡목 구간과 곳곳에 표고버섯용 참나무를 베고 나서 정리를 하지 않아 길을 막아 놓은 곳이 많다. .

시티재에 있는  안강휴게소는 교통량이 많은데도 새벽이라서 그런지 휴게소는 한적하다. 일반 국도 휴게소는 새벽시간에 장사하는 데가 거의 없는데도 안강 휴게소는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불을 훤하게 밝혀 놓고 있다. 산행출발은 시티재에서 06시 38분에 시작이다.

바로 휴게소 좌측 절개지 언덕을 기어오른다. 오늘 첫 봉오리는 350m급 두개의 봉이 연이어서 있다.. 이를 지나면532봉이다. 산행출발한지 50여분 지나니 경주 쪽에서 해가 뜬다(07:24). 오늘 해는 정월 보름 해다. 저녁이면, 또 보름달이 뜨겠지 하는 맘으로 산행을 계속 했다.

잡목구간과 암릉 구간을 지나서 산행 시작한지 1시간 10여분 만에 제법 똥 꽤나 낀 집안의 묘 앞에 달했다. 묘 비석에는 “”통정대부월성이씨지묘“”라고 한자로 씌어져있다(07:49).  이어서 오르막 내리막을 몇 번 한 다음 또 잡목구간을 지나니 미룡고개이다(08:28). 미룡고개에는 산불 감시초소가 있지만, 초소 유리창도 깨어져 있고, 근무자도 안 보인다.

미룡고개를 지나서 키를 넘는 진달래가 줄을 잇고 남쪽으로 도덕산을 바라보며 낙엽이 수북히 쌓인 능선길을 내려가면, 임도가 나온다(09:57) 산행시작한지 3시간 20여분이 지나서이다. 임도를 뒤로하고 잡목사이를 뚫고 눈 덮인 산길을 1시간 30여분을 오르락내리락 하니 봉좌산 표지판이 나온다. 길을 잘 못 든 것이다. 알바다...
 
봉좌산 오기전 510봉에서 바로 좌측으로 내려가야 하나 눈이 쌓인 관계로 510봉을 오를 때 좌측 길을 놓치고, 우측으로 오르다 보니 길을 놓친 것이다. 봉좌산 표지판에서 다시 510봉으로 올라와서 눈 쌓인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이리재까지는 계속 내리막이다. (봉좌산 표지판 좌측 옆 **신문 리본에는 낙동정맥 표지판이 있어나, 잘 못 된 것이다., 산행꾼들이 오늘 구간에 제일 헷갈리지 싶다. 특히 눈이 쌓여 있을때) (11:11)

510 봉에 올라선 다음 이리재를 향하여 내려가는데 산행 동참자인 임채헌씨가 도저히 무릎이 아파서 이리재에서 끊어야 겠다고 한다. 이리재에 도착하니 어느 회사에서 야유회를 왔는지 큰 텐트 2개를 쳐놓고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의자??를 쫙 깔아놓았다. 아마. 산행 마치고 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텐트 옆에는 큰 가마솥도 걸어놓고 소고기 국 끊이는 냄새가 난다 . 여기서 중도하차하는 동참자 임채헌씨에게 여기서 국밥 좀 얻어먹고 지나가는 버스나 택시를  기다렸다가 타고,  한티재까지 오라고 한다.
 
610봉에서 이리재까지는 40여분이 소요된다.  온통 눈길이라서 아이젠을 차고 내려온다. 이리재 부터는 운주산 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이리재 지나서 처음에는 610봉이 나오고, 610봉을 지나면, 618봉이다. 618봉을 지나면, 또 다른 610봉이 나온다. 이리재 밑 터널로는 대구 포항 간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처음 610봉을 지날 때 길 잃은 한 사람을 만난다. 겨울 산행인데도 신발만 등산화이지. 겨울 산이 겁이 나지도 않는지 그냥 평상복에 배낭도 없다. 지팡이는 어디서 줏었는지 나무 작대기 하나가 고작 등산 장비이다. 그냥 운주산에 혼자서 왔다가, 눈 위에 발자국만 따라서 내려왔는데 길을 잃었다고 한다. 우리 보고 어디서 올라오느냐고 묻는다. 시티재에서 출발하여 이리재를 지나서 올라온다고 하니. 길 잃은 40대 초반의 남자는 운주산에서 기계면 인비리마을 쪽으로 가야한다고 한다. 산행지도를 펼쳐 본다. 우리하고 만난 지점이 이리재하고 가까운 곳인데 길을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내려왔다. 또 다시 운주산을 향해서 우리하고 같이 오른다.

길 잃은 남자 분하고 운주산을 향해 오르는데, 또 길을 잃은 등산객들을 만난다. 일행은 7명인데 포항시내에 살고 있다고 한다. 눈 산행이 겁도 나지 않는지 생각도 없이 그냥 눈 발자국만 따라서 산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 번 당해봐야지 겨울 산이 어떤지를 알지하는 맘이 생긴다. 길 잃은 또 다른 팀 7명하고 처음 길 잃은 사람하고 같이 이제부터는 일행이다.

길 잃은 두 팀 8명과 함께 운주산을 향해서 오른다. 산행 지도를 보니 810봉을 지나면 포항시 기계면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운주산 정상 밑 810봉을 조금 지나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기계면 인비리 마을이 나오니깐. 길 잃은 팀 보고 내려가면 된다고 가르켜주고서는 우리 갈 길이 멀어서 정맥 길을 재촉한다. 오늘 산행 예정구간의 절반을 조금 넘었다.

운주산 오르는 길옆에 장군 묘가 있다. 비석 양 옆으로 무인 조각상인지 두개가 있고, 상석도 옛날 그대로다. 그냥 네모난 커다란 상석이다. 상석에는 글자도 없다. (14:15), 상석에 걸터앉아 조금 쉰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도 여유가 있는 그야말로 커다란 상석이다 . 이 큰 바위 덩어리 같은 상석을 어떻게 메고 왔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맘속으로는 장군이 죽으니깐, 졸병들 수십 명이 교대로 메고 산 위까지 올라왔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다.)

운주산 정상에는 기계 운비 산악회((증) 기계 태양 석물))에서 세운정상석이 박혀있고, 전부다 눈밭이다 (14:21).....
운주산 정상부터 불랫재로 내려오는 길은 눈밭이라서 또 다시 아이젠을 찬다. 산행꾼들이 많지 않은 등산로라서 그런지, 눈 발자국도 한 두 사람 다닌 흔적뿐이다. 내려오는 길에 불래골 등산로라는 표지판을 나무에 메달아 놓았다. (14:47)

운주산을 출발한지 40여분 되어서 정맥 길에 기이한 소나무가 있어, 걸터앉아서 사진 한 장을 찍는다.(사진 참조)(15:01) .미끄러운 불랫재 등산로를 따라서 내려오니. 421봉이 나온다. 421봉 주위는 표고버섯용으로 참나무를 베고 난 다음 정리를 하지 않아서, 정맥길에 나무들이 많이 갈구 친다. (15:20)

421봉을 지나서 30여분을 내려오니 불랫재이다. (15:52) 불랫재는 비포장도로가 나 있어나, 상도일리 마을 쪽에는 음지라서, 눈이 녹지 않아서 그런지 차량 통행이 전혀 없다. 여기 불랫재에는 있는??? 집안의 묘인지. 돌 사자상도 있고, 잘 가꾸어진 묘 5기가 있다. 또 길옆으로는 표고버섯용 참나무들을 많이 재 놓았다.

불랫재 길가에 쌓아놓은 표고버섯용 참나무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고 오늘 구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지도를 펼친다. 이제 1시간 30분 정도 더 가면, 오늘 산행은 끝이다. 불랫재에서 502봉 까지는 오르막이다. 이제 다리 힘도 빠졌는지 무거웠다. 510봉 지나서 550봉을 오르면 내리막이다 오늘 산행 끝점인 한티재이다 ,

550봉을 내려오니. 한티재 266M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에는 불랫재 1시간 30분, 운주산 3시간, 이리재 4시간 30분,좌측 화살표 방향에는 산불초소 1시간 40분, 침곡산 2시간 40분이라고 씌여있다. (17:24),,여기서도 헷갈렸다.  좌측으로는 포항에서 청송으로 가는 31번 국도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또 오른 편으로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한티재 터널 위를 일단은 가야하니깐, 오른쪽 산길로 접어든다.

오늘 마지막 힘을 내서 한티 터널 위를 10분쯤 오르니,. 큰 벼슬을 한 비석이 나오고 묘지도 잘 가꾸어져 있다. 묘지 앞을 조금 지나니 침곡산 가는 길과, 터널 우측으로 내려오는 삼거리이다. 삼거리에서 10분 정도 내려오니, 한티터널이다. 오늘 산행 끝이다. (17:48), 심설 산행도 아니고 완전히 겨울 산행도 아니지만, 곳곳에 눈 길이 나타나서 애 좀 먹은 구간으로 기억 될 것이다. , 추억거리 하나 만든 셈이다. 다음 구간은 한티재에서 가사령이다.
 
                                                   영남우도와 좌도의 문화적 차이
영남(영남)지방이란 “조령, 즉 새재의 남쪽 땅”이란 뜻이다. 서울에서 영남 땅을 볼 때 낙동강을 기준으로 오른편(서쪽)을 경상우도(영남우도), 왼편(동쪽)을 경상좌도(영남좌도)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지역의 풍속이나 사람들의 기질이 사뭇 다른 점이다. 경상 도읍지 등을 보면 낙동정맥 산줄기에 기댄 경상좌도의 경우 대체로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을 숭상한다”고 표현이 있고, 백두대간이나 낙남정맥의 경상우도의 경우는 “풍속이 사납고 굳세다”, “풍속이 강한 것과 무예를 숭상한다”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상우도는 좌도에 비하여 상무적 분위기가 강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질적인 차이는 민요로도 구분이 된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영남민요권이 동과 서를 구분으로 민요의 전승 상태가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학문적인 전통으로도 차이를 보였다. 16세기 중반 경상좌도에는 안동권을 중심으로 퇴계 이황이, 경상우도에서는 진주권을 중심으로 남명 조식이라는 걸출한 학자가 나타나서 각각 지역의 학계를 영도하였다. 이들은 사람이 정권을 장악한 당시에 조야에서 학덕을 겸비한 신진사류의 영수로 숭앙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인 퇴계학파와 남명학파를 이룬 이 두 학자는 차이점이 많았다. 퇴계는 학문의 목표를 “경(敬)”에 두었지만, 남명은 “의(義)를 더 중시했다. 이런 성향에 따라 퇴계가 보수적이고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다는 평을 들었고, 실천을 중요하게여긴 남명은 지나친 과단성이 결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고 한다. 후인들은 스승의 학풍을 이어받은 차이점을 일컬어 ”경상좌도는 퇴계,. 경상우도는 남명“이라고 말한다. (자료: 펌)

 

산행출발 지점 (시티재, 안강휴게소)
 

정월 보름 해가 뜨고 있슴

 

미룡고개

 

 미룡고개에 있는 산불감시 초소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1주일 남았는데도 산 위는 춥다. ((모자 챙에 고드름이~~~))

 

 봉좌산 표지판 (낙동정맥은 봉좌산으로 가면 안 됨. 봉좌산 가기 전

 610봉에서 바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야 함

 

이리재 국도, ( 밑으로는 대구 - 포항간 고속도로가 지나 감)

 

나무 사이로 대구 포항간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슴

 

운주산 바로 밑 장군 묘 앞의 비석과 석물

 

운주산 정상 표지판

 

불랫골 등산로 표지목

 

 불랫골 등산로는 눈 밭임

 

운주산을 내려와서 불랫재 가기 전 괴이한 소나무

 

 421.2봉 표지판

 

421.2봉에서 바라 본 운주산의 설경

 

 

 운주산에서 2시간을 내려와서 뒤 돌아본 운주산

 

545봉 표지 비닐판

 

 한티재 표지판(바로 산 위로 올라야지 터널 위로 갈 수 있슴)

 

오늘 산행을 끝내고, (한티터널)

 

by 야초 | 2006/02/13 08:08 | 낙동정맥종주산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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