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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의 100세 일기

빠꼼임 2020. 1. 20. 10:25

김형석의 100세 일기

[아무튼, 주말] 연희동 20년 숲길 산책…    난 산지기가 됐네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온 지 70여 년이 된다. 아이들과 나눈 얘기다. 태국서 이민 온 사람이 태국 태씨가 되고, 처음 정착한 고장의 이름을 따 영등포 김씨로 호적에 등록한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서대문 김씨가 맞겠다면서 웃었다. 4대가 서대문에서 시작해서 서울과 미국·독일 등으로 흩어졌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다. 나는 더욱 그렇다. 봉원사 아랫동네에서 40여 년을 살다가 연희동으로 와서도 20여 년을 보냈다. 여기서 생애를 마치게 될 것 같다.

연희동을 거처로 선택한 데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 집 뒤 야산이 산책로가 되고, 언덕 위여서 하늘이 많이 보였다. 안산과 여의도까지의 전망이 탐나기도 했다. 안산 줄기에서 뻗어 나온 우리 뒷산은 이름이 없다. 그래도 지금은 50분 정도 산책할 수 있는 숲길이 되었다. 처음에는 오솔길 전체의 4분의 1쯤 걸었다. 길이 좁고 숲이 우거져 있었다. 한두 해 뒤부터는 산책길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개척했기 때문이다. 내가 산책길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그 뒤에는 구청에서 길을 넓히고 철책을 만들었다. 남쪽 마을에는 작은 운동장도 생기고 어린이 놀이터도 장만하게 되었다. 층층 계단도 여러 곳에 만들어졌는가 하면 나무 의자도 놓이면서 제법 공원다운 모습으로 변한 셈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있으나 산책하는 주민들도 다양해졌다. 나는 20여 년을 다녔으니까 그 변화의 모습을 지켜보는 산지기같이 되었다. 일본 사람, 중국 사람, 미국 사람과 가족들도 2~3년씩 나타났다가는 사라져 간다. 중국인 학교가 있고 연세대와 외국인 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몇몇은 우리 집에서 분양해준 강아지를 데리고 본국으로 가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이 산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게 되었다. 산과 자연은 사랑하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법이다. 외국에 나가 있는 기간을 빼고는 언제나 산책을 즐겼다. 산책길에서 얻은 정신적 생산이 컸다. 10여 권의 저서가 되었고, 수많은 강연 내용도 그곳에서 정리했다. 그 정신적 혜택을 독자와 청중에게 나누어 주는 행운을 차지해 왔다.

신문에서 오늘은 날씨도 풀리고 미세 먼지도 보통이라고 해서 눈이 깔린 산길을 조심스럽게 다녀왔다. 이 산과 자연이 나에게 사계절을 알려주면서 자연애를 깨닫게 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정어린 인사도 나눈다. 나를 알거나 제자였던 사람들은, "선생님, 저희는 이 길을 '철학자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선생님의 철학이 깔려 있는 길 같아서요"라고 인사한다.

내 나이 100세
. 감회가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겨울이 지나가면 아침과 저녁에 또 산책을 하게 될 것이다. 산과 자연은 태양이 떠오를 때와 서산으로 넘어갈 때 가장 아름답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20대 후반에 탈북해 서울에 올 때는 어떤 희망의 약속이 있었다. 100세에 내 삶의 석양이 찾아들 때가 왔다. 아침보다 더 장엄한 빛을 발하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11/20190111016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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