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세 철학자’ 김형석 “지식 갈구하는 이는 늙지 않습니다”
‘104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기자간담회
“요즘 지방에도 강연이 있어서 가끔씩 가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늙었나 보자’ 하고 오는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다들 ‘늙은 것 같지는 않다’고 해요. 허리도 굽지 않고 지팡이도 짚지 않아서 그런지….”
9일 오전 10시 30분. 김형석(104) 연세대 명예교수는 스마트폰 시계가 예정된 시각을 정확하게 가리켰을 때 간담회장에 들어섰다. 걸음은 느렸지만 자세는 꼿꼿했다. 부축받지 않고 직접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았다. 이날 자리는 ‘김형석, 백 년의 지혜’(21세기북스) 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본지 칼럼을 엮은 ‘백세일기’(2020)에 이어 또 다른 일간지 기고를 모은 책이다. 김 교수는 “이제 내 인생은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부탁을 받고 신문에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게 99세 때”라면서 “끝나면 또다시 이어지는 다른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서 오늘까지 왔다”고 했다.
생활 습관을 비롯해 신체적 장수의 비결을 물었으나 김 교수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늙지 않고 일 많이 하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즘 팔십만 되면 다들 늙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정신적으로는 지금도 내가 늙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서 멈추지 않는 지적(知的) 성장을 강조했다. “성장하는 동안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반대로 성장이 멈추면 40대에도 늙을 수 있지요.”
성장을 계속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식이 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공부를 계속해야죠. 감성을 젊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젊은 마음을 가지려고 젊은 사람들과 어울린다. “고등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면 나도 젊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이틀 뒤에도 고등학교 강연이 있네요.” 여든을 넘긴 원로 모임에 초청받아 간 적도 있지만 “거기 앉아 있다간 나도 늙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나가고 그만뒀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서 정년퇴직했을 때와 나이 아흔을 넘어섰을 때가 ‘인생의 새출발’이었다고 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주는 책은 대부분 아흔 넘어서 쓴 것들이에요. 나이 든 사람이 후배들과 나누고 싶은 얘기들을 편하게 풀어낸 것들이지요. 젊었을 때는 용기 있는 사람, 장년기에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보람 있게 사는데 더 나이가 들면 후대에 뭔가 주는 사람이 행복한 것 같아요.”
김 교수와의 문답은 기자들이 질문하면 출판사 담당자가 메모해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는 “주변에 다른 분들이 ‘나이 들면 소리는 들리지만 말이 안 들린다’고 하는데 나는 95세쯤 그걸 느꼈다”고 했다. 신체의 노화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오십대쯤 됐나 해서 물어보면 칠십이라고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다 젊어 보입니다. 한번은 어떤 여성이 대뜸 인사를 해서 대학원생쯤 됐을까 했는데 명함을 보니 상명대 학장이었던 일도 있었지요.”
김 교수는 여러 차례 ‘국제 감각’을 강조했다. “1960년대 일본에는 경호에 대한 우려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방문이 취소될 만큼 좌파 학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자 다 사라졌습니다. 정부에서 여름방학마다 학생들을 해외여행 보냈더니,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국가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일본만큼 잘 사는 나라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죠.” 김 교수는 “여야, 세대, 지역으로 나뉘어 싸움에만 몰두해서는 미래가 없다”면서 “문제의식을 가진 젊은 세대가 국제 감각을 키우고 세계의 흐름 안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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