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終)

금남정맥1구간(구드레 나루터 ~ 진고개)

빠꼼임 2009. 4. 14. 13:00
금남정맥1구간(구드레나루터~진고개)종주산행
산행일짜 ; 2007. 6. 16(토).
날      씨 ; 날씨는 좋으나, 때 이른 더위. 낮 최고32.9도
산행시작 : 06 ; 44,,         산행마침 ; 15 ; 24,,      산행시간 : 08시간 40분 (진고개에서 탄천면까지 40분 미포함)
산행거리 : 도상 18.0 km,, 산 행 자 : 산아, 야초

 

교통갈때 : 김천IC(05;01)~논산IC(06:04)~부여(06;34)
올때 : 진고개(15;24)~도보~탄천면,삼각리(16:05)~직행버스(16;10)~부여 시외버스 정류장~택시~ (차량 회수)16;43~

서논산IC(17;05) ~ 김천IC(18;25)

 

산행경로 및 시각
구드레 나루터(06;44)~부소산(07;12)~영일루(08;04)~금성산(08;50)~4번국도. 충전소(09;15) ~장대지(將臺址)09;44~청마산성 터(10;08)~정리 갈림길(10;48)~고압철탑(11;08) ~ 신앙고개(12;02..점심12;21)~가자티고개(13;04)~명덕고개(14;21)~진고개.799지방도로(15;24)

 

금남정맥 개요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인 완주의 주화산에서 분기된 금남정맥이 남쪽으로 호남정맥을 보내고, 북쪽으로 약 200km를 뻗어가면서 전북지역에 입봉, 연석산, 주줄산, 운장산, 장군봉등을 지나면 잠시 충남지역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대둔산의 연봉들을 한바퀴 휘돌아서 나간다. 충남지역에는 백암산, 인대산, 바랑산, 월성봉, 계룡산들을 지나게 되며, 정맥이 거의 흔적만 남아 있는 부여의 부소산성과 낙화암옆 백마강 선착장옆 조룡대에서 여맥을 다하게 되며,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이 산줄기의 동사면(東斜面)을 따라 흐르는 물은 금강의 상류를 이루고 서사면(西斜面)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만경강(萬頃江)을 이루어, 일부는 금강 하류로 흘러든다.

금남정맥에는 현재 34개의 도로가 관통하고 있으며. 도로가 마루금을 지나는 횟수를 따져보면 고속국도가 2회, 국도가 6회, 지방도로가 11회, 기타도로가 15회로 금남정맥의 마루금을 3.8km 마다 단절시켜 놓았다. 이는 곧 생태축의 훼손이 심각하게 진행되어 왔고, 이로인해 야생동물들의 피해 역시 심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함에도 각종 신도시 개발로 금남정맥을 관통하는 도로개발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산경표에 따르는 금남정맥은 진안의 주화산에서 대둔산과 계룡산을 지나 부여의 부소산에서 백마강으로 그맥을 다한다. 이는 모든 정맥이 바다를 향해 그 끝자락을 풀어 놓는다는 산경표 원리에 어긋나는 오류로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고, 산경표 원리에 충실하자면 금남정맥의 끝은 군산 하구라야 맞는다는 전북산사랑회의 의견이 제기되고 있으며.

분명히 금강의 입해처(入海處)는 부여의 부소산 조룡대가 아닌 군산의 금강 하구둑이다. 산경표에 근거하면 , 모든 정맥 산줄기 체계는 분명이 입해처(바다 입구)에 이르러야 한다. 그리고 다른 정맥들은 산줄기가 모두 입해처에 이르고 있으나, 유독 금남정맥만은 부여 백마강의 조룡대에서 함몰되기 때문에 이는 분명히 산경표의 오류라고 일각에서는주장한다.

 

 

 금남정맥 시작점 구드레 나루터

금강과 백마강의 합수점이자 분계점이라 할 수 있는 부여읍 구드레나루터에서 금남정맥종주를 시작한다. 구드레 나루터는 이른 아침이라서 조용하기만 하다. 나루터에는 빈 배만 묶여있고, 인기척이라고는 없다. 백제의 숨결을 간직한 채 강물만 유유 작작 흐른다. 정맥은 나루터 우측 편 둑으로 올라야 하나. 부여에 온 김에 구드레 나루터 앞에 있는 구드레 조각공원을 한 번 둘러본다. 백마강 노래 시비 등 많은 조각들이 설치되어있다. 부소산성 입구에 이르니 매표소에는 출근 시간이 안 되어서 그런지 직원은 나오지 않았는데도, 산성 정문은 열려있다.

 

표도 끊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니 인근 주민 10여명이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 사자루를 거쳐 고란사 선착장을 둘러보고 고란사에 들리니 이제 막 법당 문을 보살님이 연다. 우리를 보고, 문을 여는 것인지, 문을 열 시간이 되어서 여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첫 내방인 것은 분명하다. 법당 제일 우측 문 앞에 서서 부처님에게 무사종주를 기원하고, 법당 뒤에 있는 고란사 약수 물 맛을 본다. 백제왕들은 이 물을 먹고 무병장수를 기원했다는데 우리 맘도 한결 이다.


 

백마강. 구드레
백마강은 부소산 건너편 상류쪽 천정대앞 범바위(虎岩里)에서 남쪽 하류인 파진산에 이르는 금강의 백마강이라 일컫는데, 강을 따라서 천정대, 부소산, 낙화암, 천룡대, 부산, 자온대, 성흥산성 등 백제의 많은 유적이 분포되어 있는 역사의 강이다. 구드레는 백제시대 백마강을 통하여 부소산성을 드나들던 곳으로 마루터 일대를 말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왕이 건너편에 있었던 왕흥사에 가기 전 잠시 머물러 예불을 드리던 바위가 있었는데 왕이 도착하면 스스로 따뜻해졌다 한다,

구드레

백마강가에 있는 나루터인데 “구드레”란 “큰 나라”라는 뜻으로 백제를 의미한다. 백제시대에 구드레에는 큰 나루터가 있어 일본, 중국과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곳이며, 달 밝은 밤에는 백제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고, 시원한 강바람은 찾는 관광객의 휴식공간이며 부여군민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주변에는 토속음식이나 별미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많다.
 

 

부소산
백제시대 평상시에는 궁궐의 후원으로 전쟁 시에는 최후성곽으로 이용된 부소산은 그 옛날 나당연합군이 침입하였을 때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여인들의 아름다운 숨결이 느껴지는 낙화암을 비롯, 고란약수로 유명한 고란사, 아직도 포곡식과 테뫼식의 산성 흔적을 볼 수 있는 부소산성, 떠 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정을 계획했던 영일루와 백마강에 잠기는 달과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며 하루를 되돌아보는 사자루, 백제 삼충신(성충, 흥수, 계백)의 숭고한 넋을 기리며 백제 문화제의 계기가 된 삼충제를 지내는 삼충사, 그 외에 군창지, 서북사지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잠시나마 백제인의 예술 혼을 맛볼 수 있게 해 준다. (자료:펌)

 

  사 자 루

 

낙화암 선착장

 

고란사 전경

고란사는 고려시대 때에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여인을 추모하는 의미로 지어진 절이다. 백제시대에는 이곳에 절이 아닌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 이름은 뒤쪽 바위에서 자라는 고란초에서 유래하였다. 고란사는 법당, 요사채, 범종각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의 법당 건물은 1959년 은산면 각대리에 있던 숭각사 건물을 옮긴 것이다. . 고란사는 남아 있는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워진 절로 보고 있다. 특히 연꽃무늬가 새겨진 2개의 주춧돌은 대표적인 고려의 유물이다. (자료 : 펌)
 

  고란정 약수

고란약수 전설
아득한 옛적 소부리의 한 마을에 금슬 좋은 노부부가 살았는데 늙도록 자식이 없어 할머니는 늘 되돌릴 수 없는 세월을 한탄하며, 다시 한 번 회춘하여 자식 갖기를 소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일산(日山:금성산)도사로부터 부소산의 강가 고란사 바위에는 고란초의 부드러운 이슬과 바위에서 스며 나오는 약수에 놀라운 약수에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날 새벽 남편을 보내 그 약수를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다음 날 일찍 약수터로 찾아가보니 할아버지는 없고 웬 갓난아이가 남편의 옷을 입고 누워있어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아차 했다. 도사가 한 잔 마시면 삼년이 젊어진다는 말을 남편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갓난아기를 안고 집에 돌아와 고이 길렀는데 후에 이 할아버지는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백제시대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한다. (자료: 펌)

 

     낙  화   암

낙화암, 꽃들이 떨어진 곳이라‘’‘.. 목덜미 뒤에서 나.당 연합군의 말발굽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백제가 무너지던 날(의자왕 20년, 서기 660년)백제의 여인들이 적군에게 잡혀 치욕스러운 삶을 이어가기 보다는 충절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백마강에 몸을 던졌던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마강에서 바라보면 아직도 절벽 색깔이 붉은데, 당시 백제 여인들이 흘린 피로 물들였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아래쪽에서 유람선을 타고 돌아갈 때 더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백   화   정

부소산성 북쪽 백마강변에 험준한 바위위에 평면을 6각형으로 지은 정자이다. 백제 멸망당시 궁녀들이 이곳의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죽은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9년에 세운 것이다. 정자의 바닥을 지반에서 높이 띄우고 남쪽에 나무계단 하나를 두어 출입할 수 있게 했다. 마루 바닥 주변에는 간단한 평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천정에는 여러가지 연꽃 문양을 그러 놓았다.정자에 올라서서 보면 주변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백제의 700여년 왕조가 무너지던 날 의자왕의 궁녀들이" 차라리 자결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하고 이곳에 이르러 강물에 몸을 던져 원혼을 묻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낙화암이라 이름지어진 것은 후에 사람들이 그 당시 궁녀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해서 이름 붙인 것이다. 암벽에 송시열(1607~1589)의 글씨로 전하는 "낙화암" 이라고 조각된 글자가 있다. 1929년에 는 궁녀들을 추모하기 위해 낙화암 바위의 꼭대기에 육각형의 백화정을 건립하였다.

 

    반 월 루

 

   영  일  루

부소산의 동쪽 봉우리를 말하는데 원래 이곳에는 영일대가 있어서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 하던 곳이라 전한다. 1964년5월 홍산에 있던 조선시대의 관아문을 옮겨 세우면서 이름을 영일루라 하였다. 기단은 정갈하게 다듬은 장대석을 1단으로 쌓고 주춧돌은 큰 8각 장초석을 썼다. 기둥은 모두 원기둥으로 하고, 기둥위의 공포는다포식으로 짜 올렸다. 아래층의 기둥이 높아서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건물 폭에 비해 키가 큰 건물이 되었다.

 

이 산성은 백제 성왕16년 (538) 공주에서 이곳으로 옮겨 123년간 사용한 사비도성의 중심산성으로 이중의 성벽을 두른 백제식 산성이다. 성내에는 당시의 군창터로 전해오는 곳에서 탄화된 국식이 나오고 있으며, 사자루, 반월루, 고란사, 궁녀사가 성내에 있고 유명한 낙화암이 있어 관광지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통   수   대


부소산성을 완전히 한바퀴 돌고. 시내로 향한다. 시내 구간은 부여여고등 시가지를 지나야 하므로 생략하고, 곧 바로 박물관으로 가서 박물관 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박물관 외부만 둘러보고, 금성산으로 오른다. 박물관 뒤편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니 금성산 성화대 조각이 나오고, 무노정(無老亭)현판이 달린 정자가 나온다. 무노정을 뒤로하고, 잠시 계단을 오르니 금성산 정상 통수대(統帥臺)가 나온다.육각정자이다. 통솔하기 알맞게 사방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우뚝하게 서있다.

4번 국도 가나다 충전소로 내려 섬

4번 국도가 지나는 석목재에 내려선다. 국도 건너편에는 가나다 엘피지 충전소가 있고, 그 우측으로 성원빌라가 있다. 빌라 건물을 우측으로 끼고 오름이 이어지며, 좌측편으로 표고재배사가 나타나고, 오름길이 이어진다.

 

    4번 국도 가나다 충전소 건너편의 버스 승강장


                                                                         장    대   지
석목리 고개 마루에서 능선길로 다시 들어서면 오름이 이어지고 부여 사비나성 장대지 표지판을 만난다. 여기서 정맥은 좌측으로 꺾이면서 내림길로 이어지고 10여분 진행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우측으로는 오산마을로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부여 방향이다.

 

     청마산성 터

                           오산고개를 지나 오름이 이어지고, 청마산성터가 나오고 그 옆에는 청마산성 안내문 표지판이 서 있다.

 

  청마산성 안내문

 

   삼거리 이정표 (여기 이정표에는 금남정맥 표시가 없으나, 바로 밑으로 빠져야 함) 여기서 부터 등로는 나빠 짐

 

   고압철탑 NO 13

                                         청마산성터를 1시간 여 지나면, 고압철탑을 만난다. .

 

                  신양고개로 내려서면서

                                                                     시멘트 도로에 내려선 다음 바로 오름이 이어진다.

 

   가자티 고개로 내려 섬

신양고개를 1시간 정도 지나면, 절개지 급경사 면을 타고 가자티 고개로 내려선다. 지나가는 차량이라고는 한 대도 안 보인
다.정맥은 팬스 우측 끝을 통과하여 이어진다.

 

명덕고개로 내려서면서(흰 부분이 시멘트 도로 임)

정맥길은 사람의 발자취가 끊어진지가 꽤나 되었는지 명감넝쿨과 칡넝쿨을 전지가위로 자르면서 진행 할 정도로 등로가 좋지 않다.

 

      계룡산이 한 눈에 들어 옴

                    밤나무 단지에 들어서니 밤꽃이 활짝피어 있고, 상단부에서 계룡산을 바라보니 한 눈에 들어온다.

 

오늘 산행 끝점인 진고개

밤나무단지를 통과하고, 우측으로 꺾어 내려오니 진고개다. 지방도799 번이 지나며, 도로 건너편에는폐자재를 야적한
고물상이 있고, 광명리마을 표석과, 지당 셰게만물 박물관 입구 간판이 서있다.

 

  진고게에서 탄천면 소재지로 내려서면서


 

  탄천 초, 중학교 교정

 

 탄천면 삼각리 버스 승강장


by 야초 | 2007/06/17 09:57 | 금남정맥종주산행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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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알럽뽕꺅 at 2008/08/03 12:58
ㅎㅎ여기 진짜 좋아요><
구드레 나루터 가보셨네용??ㅋ 재밌져!!~~
구드레 나루터 근처에 장원 막국수라구 있는뎅..
거기 가보시지 그랬어요.. 짱 맛있어요><우왕 굳!! 정처없이 맴도는 나그네는 멋있습니다!..
Commented by 시계바늘 at 2008/08/03 12:59
여행 잘 갔다오셨군요.

고란정 물은 마시셨나요? 한번에 3년이라는데..

정말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