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終)

호남정맥13구간(큰덕골재 ~ 개기재)

빠꼼임 2009. 4. 16. 21:05

호남정맥 13구간(큰덕골재~개기재)종주산행

산행일짜 : 2006. 10. 28(토).     날씨 : 산행 적합

산행시작 : 08 : 05 ,      산행마침 : 15 : 45,    산행시간 : 07 : 40 (접속시간 25분 제외)
산행거리 : 33.8km,           산 행 자  : 산아(1955년산), 솔바람(1963년산), 야초(1947년산). 3명
 
산행경로
    큰덕골재  ~  고비산  ~  가위재   ~  추동재  ~ 봉화산  ~  예재(29번 국도)  ~  계당산  
    ~개기재(58번 지방도)

 

 산행 접속지점 큰덕골(大德) 마을회관

 

큰덕골마을 앞 버스정류소

 

큰덕골 마을 凉風亭

 

 호남정맥 능선으로 해가 오르고 있슴

 
화순 운주사 와불
월출산에서 두륜산 거처 해남 사자봉 땅끝까지 이어진 “땅끝기맥”은 호남정맥 깃대봉 분기점을 벗어나자마자 북쪽으로 곁가지를 치는데, 거기엔 바로 와불과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운주사(雲住寺)가 자리하고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이 사찰을 세운 이는 도선(道詵)국사라 한다.

도선은 한반도의 지형을 항해하는 배인 행주(行舟)형국으로 보았는데, 태백산과 금강산은 뱃머리이고 월출산과 한라산은 배꼬리, 부안의 변산은 키, 지리산은 삿대, 그리고 능주(화순)의 운주사는 복부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배가 물 위에 뜨려면 복부를 무겁게 눌러주어야 엎어지지 않으므로, 허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도술로 하룻밤에 1.000기의 석탑과 1.000기의 석불을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닭이 우는 바람에 한 쌍의 불상은 일으켜 세우지 못했고, 절 서쪽 산비탈에 있는 와불이 바로 그것이다. 길이가 12m인 아내불이 솔숲에 사이좋게 누워있다. 누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 운주사에 남아있는 석탑은 21기, 돌부처는 100여기에 이른다. 층수와 모양이 다양한 석탑들이 산야 여기저기에 즐비하게 서있는데, 이들은 호떡탑, 항아리탑, 걸레탑(동냥치탑), 명당탑, 실패탑같은 이름을 달고 있다. 또 돌부처들도 10m의 거불에서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크기와 생김새가 다양하다.
이 천불천탑은 고려 때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나라에서 불사를 벌여 만든 것이라고 전하는데, 한편으로는 국가에서 벌인 작업치고는 너무 정교하지 않다는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또 고려를 침략한 원나라 군부가 고려 삼별초군에 맞서기 위한 군사 거점으로 운주사 천불천탑을 조성하고 이곳에서 원나라 병사들의 무운(武運)을 빌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 수수께기 많은 운주사는 문학적 상상력의 공간이기도 했다. 황석영은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운주사를 의적 장길산이 민중들과 함께 새 세상을 꿈꾸던 혁명의 땅으로 묘사하였다.(자료:펌)

 

 정맥 능선에 올라서 바라본 큰덕골 마을

 

정맥 한 구간을 하고자 힘차게 오르고 있슴
 

정맥 길이 영 엉망임.
 

 중의제(저수지)가 바라 보임


 정맥 종주팀의 시그널

 

봉화산 정상 표지판 (여수 오동 산악회에서 매달았슴)

 

 망개(명감, 청미래) 열매

 

계당산 정상

화순 쌍봉사
호남정맥 계당산(桂堂山· 5802m) 서쪽 기슭에 자리 잡은 쌍봉사(雙峰寺)는 철감선사 도윤(道允)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창건하였는데, 도윤의 법호가 쌍봉이었으므로 쌍봉사라 하였다. 도윤은 이곳에서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창건 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듭하다가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의 방화로 대부분의 건물과 재산이 소실되었고 6.25전쟁 당시에도 대부분 건물을 소실되었지만, 극락전과 대웅전만이 극적으로 보존되어 왔다.
 
대웅전이라 불리는 삼층목탑은 삼국시대 목탑 양식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는 건물이다. 신라 황룡사 구층목탑의 구조를 상상 복원할 때 그 기준작으로 되고, 일본의 최고 목탑인 호류지(法隆寺) 오중탑(五重塔)의 원조격이 되는 목탑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건물은 1984년 불에 타버리는 비운을 맞았다. 그러나 다행히 조사해놓은 실측 설계도면을 참조해 2년 뒤인 1986년에 복원하였다.
 
이외에 우리나라 단일 석조물중 가장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고 비례감각이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 그리고 비록 몸돌은 없어졌지만 9세기 비석 중, 돌거북의 조각이 가장 생동감 있게 표현된 철감선사탑비(보물 제170호)는 불교 미술의 위상을 한껏 높여주었다는 평이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사유로 최근에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이루어졌음에도 아늑하고 단아한 산사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자료:펌)

 

멀리 존재산과, 통신 중계탑이 바라 보임
 

 계당산 정상 억새 밭

 

개기재에 닿기 전, 의령남씨 설단비 ( 미니 골프장같이 잔디밭이 넓으며,

설단비 옆에는 셰손표도 붙여 놓고, 묘가 여러기 있는데 잘 가꾸어 놨슴)

 

오늘 산행 끝점인 58번 지방도가 지나는 개기재

 

 산행 출발지에 세워 놓은 차를 회수하고 나오면서 도림 역 이정표를 한 컷 했슴

(지도에는 도림역이 나오지만, 지금은 역사도 없고, 간이역으로 변했다고 함)
 

상초방, 큰덕골 들어가는 진입로, 29번 국도에서 갈라짐

건널목은 경전선 철로 임
 
호남정맥 종주를 시작한 게 늦은 봄이었는데, 13구간을 종주하려고 큰덕골재를 오르는데 벌써 손이 시리다.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진행이다. 땀이 나면, 여름 같기도 하고, 땀이 식으면 초겨울 같은 그런 기분이다.

08시05분 큰덕골재에서 동남방향으로 정맥 길은 시작된다. 잡나무와 잡풀들을 제치며 10여분 오르니 방화선이다. 방화선을 따라서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오늘은 당초에는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으나, 멀리는 안개가 자욱한 것을 보니 날씨는 좋을 것만 같다. 08시58분 십자로 안부이다. 여기서부터 방화선은 끝이 나고. 반갑지 않은 잡풀 덩이와 가시넝쿨 숲이 기다리고 있다.

09시10분 397봉에 힘겹게 오른다. 지난 3주간을 공사적인 일로 정맥 종주를 쉬어서 그런지 오늘은 힘이 꽤나 든다. 지도상의 가위재가 어느 곳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10시25분 444봉 추동재라고 짐작은 되나 이정표 하나 없으므로 확실한 것은 알 길이 없다. 444봉은 장흥군, 화순군, 보성군의 경계이다. 오늘로서 장흥군을 뒤로하고, 한참이나 헤어졌던 보성군과, 화순군 경계 날등을 타고간다.

 
10시48분 봉화산 정상이다. 봉화터라고는 볼 수도 없고,정상에는 여수 오동산악회에서 양철 표지판을 나무에 매달아서 알 수 있다. 지도상에 삼각점이 있어서 한참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는데 내림길로 10여 미터 진행하니 삼각점(445, 74. 9 재설)이 나타난다. 보성군 봉화산처럼 여기도 정비를 하면 어떨까 생각이다.

11시24분 예재이다. 옛날 국도이다. 지금은 예재 터널이 뚫려서 차량통행은 거의 없다. 예재로 내려오는 길은 벌목을 해 놓고 치우지를 안 해서 길이 엉망인데다가, 망개덩굴과 잡목들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오늘 예정된 산행구간중 반쯤 했는가 보다하고 잠시 쉰 다음 계속 진행이다.


11시 35분 우측으로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붙는다. 곧이어서 헬기장이 나타난다. 경전선 예재 터널 위를 지나고, 378봉, 379봉,360 봉을 연이어서 지나서 적당한 자리를 잡아서 점심이다. 오늘은 그렇게 높은 산이 많지 않아 산행속도가 빠른 감이 있다.

13시30분 523봉이다. 언제 460봉을 지나쳤는지 감이 없다. 523봉에는 지도상 삼각점이 있다고 표기 되어있으나, 찾을 수가 없다. 이제 계당산이 눈앞에 다가온다. 13시 50분 560봉을 지난다. 이어서 572 봉을 지난다. 진달래 나무 군락과, 싸리나무들이 발길에 걸리고 중간 중간 망개 가시 덩굴이 발목을 잡고, 옷소매에 거치적거린다.

14시 20분 계당산 정상이다. 여기서 존재산을 바라보는 조망은 일품이다. 이제까지 호남정맥 종주 시작한 이래로 존재산 군부대 통과할 때가 제일 애 먹지 않았나 하고 머리에 떠오른다. 계당산 정상에는 삼각점(306, 86년 재설)이 박혀있고, 호남정맥 계당산 5802m라고 쓰인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있다. 이어서 헬기장이 나타나고(14:47), 억새밭이 장관이다. 지도상에는 509봉에 헬기장과 삼각점이 표시 되어 있으나 확인할 방법이 없다. 오르 내림을 몇 번이나 반복하니 의령남씨 묘역이 나타나고 곧 이어서 지방도 58호선이 지나는 개기재이다. 오늘 산행 끝점이다(15:45).

출발점에 세워둔 차를 회수하러 가고자 개기재에서 061-114로 이양면 개인택시를 불렀더니, 이양 개인택시 전남11바 1830, 구정인 기사님이다. (핸드폰 011-605-5152, 택시호출 061-372-3466), 쌍봉사 앞을 지나서 지름길로 큰덕골로 가서, 출발점에 세워둔 차를 회수하고 나오면서 지도상에 도림역이 있어서 찾았으나, 도림역은 언젠가 간이역으로 변해버리면서 역사는 없어지고 도림역 표지판만 남아있다.

 

by 야초 | 2006/10/29 09:59 | 호남정맥종주산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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