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시작 : 08 : 45, 산행마침 : 13 : 10, 산행시간 : 04 : 25
산행거리 : 14.2 km, 산행동참 : 산아, 솔바람, 조용화, 야초(4명)
산행경로
광비령 - 950봉(1) - 950봉(2) - 937.7 봉 - 1030 봉 - 통고산(1066.5m) - 889봉 - 830봉 - 810봉(헬기장)
- 730봉 - 답운치
낙동정맥 19구간 (광비령-답운치)
♦♦♦♦광비령에 도착하니 완전히 강풍이다. 광비령을 광풍(狂風)령이라고 이름 붙여줬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종일 황사가 심해서, 시계는 500m도 안된다. 지난 구간 산행시 오늘 산행구간 끝지점인 답운치까지 산행을 계속했어야 하나, 지난 구간 산행 다음 날 산행동참자 중에서 2명이 산행 다음 날 합천 벚꽃 마라톤 대회에 참가 계획이 되어있어서 중간(광비령)에서 끊은 관계로 오늘은 산행구간이 짧은, 지난번 나머지 구간(광비령-답운치)을 종주 하게 되었다.
오늘 구간은 통고산 통과 구간이다. 산행 끝내고 나니 황사가 목으로 얼마나 들어왔던지. 목구멍이 컬컬하고, 눈은 따갑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고기 육회로는 전국에서 유명한 예천 백수식당에 들려서 육회와, 육회 비빔밥을 먹고 나니 목구멍에 낀 황사가 좀 내려갔는지 목이 좀 가라앉았다. 마침 백수식당에서 나올 무렵 탤런트 심양홍씨와 마주쳐서 사진 한 컷 했다. (실제로는 목이 컬컬할때는 돼지고기 비계를 먹어야 하는데~~~~ ♦♦♦♦
오늘 산행시작은 08시45분이다. 당초에는 31번 국도에서 36번국도 분기점으로 진입하여 봉화군 소천면 남회룡교 방면으로 접근하여 산행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남회룡교를 찾는데 용이치 않아. 수비면 수하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서, 산행시작점인 광비령에 도착이다. (산행마치고 알아봤더니, 지도상에는 남회룡에서 광비령까지 포장이 되어있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포장이 되지 않았고, 비포장 길로 차량통행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았음)
광비령 절개지 위로 기어오르니 바람은 완전히 狂風이다. 오늘 첫 봉오리(950m)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숨차게 1시간여 오르니 첫 950봉이다(09:51), 봉오리에는 관리가 잘 되지 않은 헬기장이 있다. 이어서 7분여 산행을 계속하니 삼각점이 나타닌다. 안내문에는 높이 약 938m라고 씌어 있고, 동경 129도 11분22초, 북위 36도 52분 46초라고 기록되어있다. 지도상의 937.7m인 것 같다.
삼각점 안내문 옆에는 심마니들의 쉼터인지 통나무를 걸쳐서 지붕은 있으나, 하늘이 뻔히 쳐다보이는 집을 만들어 놨다. 부근에는 소나무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송이지기 움막은 아닌 것 같다(10:00). 오늘은 산행시간이 짧은 관계로 점심을 준비하지 않은 관계로, 여기서 간식이다.
이어서 15분여 내리막을 달리니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는 개설한지 얼마 되지 않은 비포장이다. 임도를 지나서 오르막을 계속 하니 우측(동쪽) 방면은 왕피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타난다(10:39). 이정표에는 서쪽방면 하산:3.3km 1시간 20분이라고 씌어져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꺾어서 산행은 계속이다. 이정표를6분여 지나니 남부지방산림관리청에서 설치한 산불무인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시설물이 나온다(0:45). 통고산 정상이다.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시설물을 우측에 끼고 돌아가니, 커다란 통고산 정상 표지석이 나타난다. 표지석 전면에는 通古山 해발1067m라고 음각되어있고, 후면에는 표석위에 오석을 덧붙인 울진군수의 통고산 정상 표석 건립문이 씌어있다.
후면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이 산은 서면 쌍전리에 위치한 해발 1,067m의 백두대간 낙동정맥으로 산세는 유심웅장 (幽深雄狀)하다. 전설에 의하면 부족국가시대 실직국(悉直國)의 왕이 다른 부족에게 쫓기어 이 산을 넘으면서 통곡하였다 하여 통곡산(痛哭山)으로 부르다가 그후 통고산(通古山)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산의 동쪽에는 진덕왕 5년 의상대사가 부근의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天竺山)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지어 불리워지고 있는 천축산이 있고 산기슭에는 그 당시 창건한 불영사가 있으며 하류에는 불영계곡이 있다. 이 표주석은 관광울진, 환경울진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는 7만 군민의 정성어린 뜻을 담아 육군본부 항공대 헬기 지원으로 이곳에 세우다.
1978년11월23일 울진군수
통고산 정상 옆에는 관리가 잘 된 듯한 헬기장이 있다. 여기서 15분정도 쉬어 간다. 통고산 정상에서 주위를 바라보니, 온통 회색빛이다. 황사가 너무 심하다. 시계는 채 500m도 안된다. 통고산에서 답운치로 내려오는 산행길 옆 중간 중간에 나무로 만든 타원형의 액자에다가 나무이름과 나무의 용도를 써 놓아 나무에 매달아 났다.
눈요기는 된다. 나무이름을 보고 내려오니. 지겨운 것도 잊어버리고 오르락 내리락 오늘의 끝점을 향한다. 통고산 정상을 출발하여 25여분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하니 통고산 3번 지점을 알리는 119안내 표지 현수막이 나타난다(11:20)..
119안내문 현수막을 지나서 29여분 내리막길을 계속하니 임도가 또 나타난다(11:40). 산행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임도개설을 요 근래에 했는가 싶다. 임도를 29여분 지나니 왼쪽(서쪽)으로는 낙엽송 조림지가 나타나고 우측(동쪽)으로는 금강송 군락이 가끔씩 나타난다.
산행 길 중간 중간에는 겨우살이가 붙어있는 참나무들도 보인다. 임도를 1시간 20분여 지나니 정맥 능선 상에 흙무덤이 한 기 있다(13:00).. 흙무덤을 7분여 지나서 헬기장이 있는 730봉이다(13:07). 헬기장을 지나서 내리막길을 5분여 지나니 통신중계소 시설물이 나타나고, 봉화, 울진을 잇는 불영계곡을 끼고 도는 36번 국도가 나타난다. 오늘 산행은 여기서 끝이다. 36번국도에서 통고산오르는 초입에는 통고산 등산 안내문 표지판이 서 있다.
안내문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통고산 등산 안내문
*통고산을 찾은 산행 가족들께 알리는 글*
이곳은 백두대간의 낙동정맥 구간으로서 지정된 등산로가 아닙니다. 통고산 정상을 등산하시고자 하는 분들께서는 지정된 등산로인 통고산 자연휴양림으로 입장하시어 안내를 받으신 후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 ☎ 054) 783-3167(통고산 자연휴양림)
울진국유림관리소장
산행시작점인 광비령
심마니 쉼터 앞에서
무인산불감시탑
통고산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황사가 얼마나 심하던지. 산행후 다음, 다음날 신문을 봤더니만, 某 중앙일간지에
1면 톱 타이틀로 ""4. 8황사 테러"" 한국의 주말을 파괴했다....라고 썼다.
사진 가운데 나무를 보면 좀 이상하게 자랐슴
어미 나무위에 새끼 나무가 얹혀 있는것 같음
겨우살이의 풍경
금 강 송
오늘 산행 끝점인 답운치
산행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국에서 맛있는 육회집으로 소문난 백수식당에 들렸다가 나오면서, 텔런트 심양홍을 만났슴 (사진 왼쪽부터 황소장(백두대간, 낙동정맥 산행동참자), 백수식당 주인 어른, 나(야초), 심양홍 텔런트)
(광비령-답운치)
낙동정맥 삿갓재(1119.1m)의 답운치 등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드는 울진 불영계곡(佛影溪谷. 명승 제6호) 물줄기는 수정처럼 말고 깨끗한 물을 자랑한다. 또 금강송이 뿌리박고 서있는 바위 벼랑의 자태는 계곡의 운치를 더해 준다. 특히 진잠교서부터 불영사 입구까지 8km쯤의 구간엔 의상대, 창옥벽, 조계등, 부처바위, 중바위, 거북돌, 소라산 등 온갖 전설이 얽혀 있는 절경지가 많다. 전망 좋은 곳에는 팔각정을 세워놓아 계곡 풍광을 굽어볼 수 있다 .
지금은 불영계곡과 나란히 달리는 36번 국도에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지만, 예전엔 이 길로 해서 울진과 봉화를 잇는 주요 길목인 낙동정맥 답운치를 넘으려면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에 가로 막혀 동서 교류가 원활치 않았던 경북 동해안 지역 , 특히
울진 주민에겐 길을 넓게 뚫고 포장하는 일은 숙원사업이었다.
불영계곡의 좁은 비포장 길은 1984년에야 뚫렸다. 총54.4km난구간의 도로를 뚫어야만 하는 불영계곡 확포장 공사엔 당신 1117야전공병단 군인들이 투입되었다. 2년여의 공사 기간 중 꽃다운 나이의 군인 9명과 민간인 운전기사 1명을 포함 모두 10명이 사망했다. 그만큼 어려운 공사였다. 불영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대흥리 길가엔 이들을 위로하듯 굴착기를 들고 철모 쓴 군인 동상과 도로준공기념탑이 서있다.
불영계곡 구절양장의 중간쯤에 자리한 불영사(佛影寺)는 651년(신라 진덕여왕 5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창건 당시 연못에 부처모양의 바위그림자가 비쳤다 해서, 불영사라 불렸다. 1397년 (태조 6)에 화재로 타버린 것을 소운(小雲이 중건하였는데, 그 후 다시 소실되어1500년(연산군6), 양성법사(養性法師)가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어 모두 소실되었으나 응진전(應眞殿)만은 피해를 면했다. 그 후 1609년(광해군1) 진성법사(眞性法師)가 재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연못과 어우러진 응진전(應眞殿, 보물 제1201호)등의 법당은 비구니절집답게 단아함이 넘치고, 영산화상도(보물 제1272호)가 절집의 격을 한층 높여준다. 불영계곡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자료: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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